미국의 도박산업 합법화 및 도박게임을 산업으로 발전시킨 커크 커코리언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산업의 역사는 대공황이 미국을 휩쓸던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스베가스는 1933년 3월 19일 네바다 주의회 법이 통과 되면서 도박이 합법화 되었다.

이는 낙후된 지역경제를 조금이나마 견인할 수 있을까하여 준 

일종의 인센티브였다.

당시 이 법을 통과시킨 의원들조차 훗날 이 법이 사막을 지금의 라스베가스로

천지개벽 시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당시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은 경제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콜로라도 강에

댐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후버댐이다.

댐 공사가 시작되자 이곳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몰려들었고,

공사 현장에서 멀지 않은 시골 마을 라스베가스에는 노동자들을 위한

숙소와 도박 시설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로스앤젤레스의 호텔사업가 토머스 헐은 사막의 한 도로에서 펑크난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었다.

오가는 차량을 가만히 헤아려보니 제법 많았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자 그는 쓸모없는 이 사막의 땅 4만평을 한 평에 13센트 씩 주고 사들였다.

5000달러 남짓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네온사인으로 장식된 풍자를 세운 ‘엘렌초’(El Rancho)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운타운’에서 남쪽으로 5km 떨어진 황량한 사막 땅에 등장한 최초의 모텔 카지노였다.

1941년 4월 3일, 이것이 사막 한 가운데 세워진 라스베가스의 중심 거리

‘더 스트립’의 탄생이었다.

세계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라스베가스는 풍부한 수자원과 내륙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으로 군수공장이 들어섰다.

그리고 미국 3대 공군기지인 하나인 Nellis Air Force Base가 라스베가스 지역에

자리 잡으면서 인구유입이 늘어났다.

플라밍고 호텔이 자리 잡고 돈을 벌자 다음으로 샌즈, 라이베리아, 던즈, 

트로피카나 호텔 등이 들어섬으로서 지금의 라스베가스의 형태를 이룩하기 시작하였다.

사막 한복판에 자리 잡은 라스베이거스의 개발 초기엔 벅시와 같은 

유대인 마피아의 참여가 컸다.

그 뒤 미국 유대인 범죄조직은 1960년대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인원과 조직 면에서 우세한 이탈리아 마피아와의 대결에서 밀렸다.

유대교 랍비들의 순화 노력도 유대 마피아 조직 와해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교육받지 못한 유대 마피아 1세대들도 자식만은 영재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단 한 세대 만의 의사·변호사·교수 등 전문 직종으로 2세의 직업 전환이 이뤄졌다

1960년대 라스베가스 인구는 6만 4천명으로 늘어나면서 네바다 주 인구의

22%를 차지하게 되었고, 라스베가스가 포함된 클락 카운티는 인구는 13만 명에 달했다.

1960년대 하워드 휴즈라는 거부가 마피아들이 떠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는 정, 재계의 연줄을 이용하여 카지노호텔을 사들였다.

휴즈는 KLAS-TV 라는 로컬 방송국도 매입 하는 등, 현대 라스베가스의 모습이 되기까지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카지노에 기업적인 요소를 추가했다.

그리고 새로운 경제적 흐름으로 인해 라스베가스는 새로운 건물들이 연이어 지어지게 된다.

성장하는 라스베가스에 휴즈는 카지노와 호텔 구입 또는 신축하면서 

본격적으로 도박게임을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하워드 휴즈의 성공에 따라 1970년대부터 라스베가스에는

많은 투자가들이 호텔과 카지노를 신축하기 시작했다.

By fonu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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